간증문 이정숙성도
간증문 청탁을 받고 많이 당황하였지만 생각해보니 이렇게 부족한 사람을 통해서도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 마음이 계신 것 같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주님께 받은 은혜를 전합니다.
기억해보니 교회에 첫발을 디딘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이었습니다. 왜 갔었는지 기억은 아련하지만 어떤 선생님이 들려주시던 성경얘기가 너무나 재미있어 그 재미로 다니곤 했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시절 친구의 권유로 다시 몇 번 다녀본 것이 어린시절 교회에 대한 기억의 전부였습니다.
대학졸업 후 초등교사의 직업을 갖게 되었고 결혼하여 아이도 낳고 살면서 일상생활에 별 아쉬움이 없을 정도로 돈도 모아가며 열심히 살았지만 저에게도 남들에게 들키기 싫은 가시와 같은 아픔이 있었습니다. 저는 소심한 성격에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지를 못하고 남들의 실수도 잘 용납해주지 못하는가 하면 자신도 매사에 실수하지 않으려고 하다보니 늘 피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자연히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친구도 없어 늘 외로움을 느끼곤 했습니다. 불평불만도 참 많았습니다. 그러니 매사가 부정적으로 보였고 잘되지 않는 일은 당연히 환경 탓이나 타인의 잘못으로 돌리며 세상에서 하나뿐인 사랑해 줘야할 남편과 시댁식구들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며 미워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허약한 체질로 늘 육신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크게 중한 병은 없었지만 허리에 통증과 발등이 저리고 위장이 쓰려서 늘 고생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온몸에 뼈마디가 부숴 질듯이 아파서 늘 고통스러웠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연약함에 시달리다보니 자연히 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하게 되고 어떤 일에 부딪칠 때면 화부터 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내가 매일 숨쉬고 살아가는 생활 속에서 기쁨과 만족함을 주는 것은 어디에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있다면 통장에 불어나는 숫자와 제산이 그나마 나에게 유일한 위로와 만족이었습니다.
기독교가 어떤 종교인지는 지식으로 알고는 있었지만 굳이 종교를 가져야 하는 이유도 그런 구체적인 생각도 저는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여름 시누이가 ‘기독교방송을 보면 참 좋은 내용들이 많다’고 권하기에 별생각 없이 시청하게 되었는데 문득 목사님들의 설교가 저의 마음을 끌었습니다. 그래서 그 후로 기독교방송을 자주 시청하게 되었고 말씀을 들을 때 마다 마음을 움직이는 무언가를 느꼈지만 그러나 굳이 교회에 나가고 싶은 마음은 들지를 않았습니다. 만약 나가더라도 나이가 들어 할일이 없어질 때 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었습니다.
만일 제가 교회를 나갈려 해도 가족들이나 주위환경이 그것을 받아들이기는 힘들 것이라 생각했고, 그리고 교회를 다니게 되면 헌금을 한다는데 그 돈이 아까울 것 같아 교회를 다닌다는 것은 생각지도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의 생각을 무시하듯 너무나 갑자기 찾아 오셨습니다. 2005년 10월 어느 날 시누이를 따라 정말 우연 교회를 가게 되었는데 찬송을 듣는 순간 갑자기 마음이 뜨거워지더니 누군가 오랫동안 내안에 쌓이고 싸여온 멍든 마음과 고통의 짐을 감싸는 것 같았습니다. 소리 없는 흐느낌이 이런 것일까요 어느새 눈물이 가득하여 뺨으로 흐르면서 나는 ‘아! 어쩌면 하나님이 살아 계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11월 20일 같은 학교에 근무하던 문선생님의 전도로 명곡교회에 나오게 되었는데 자리에 앉아 강단현수막에 적힌 하나님이란 글자를 보는 순간 그것이 제 가슴에 비수처럼 꽂히며 갑자기 알 수 없이 눈물이 다시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눈물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주님을 불렀습니다. 지난 날 저의 이기적이고 교만스럽던 모습들이 하나하나 생각나기 시작했고 비록 볼 수는 없었지만 저는 그분에게 용서의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이기적인 생활들과 그리고 상처주고 미워한 남편과 시댁식구에게 정말 미안했고 이러한 죄를 용서해 달라고 울면서 주님의 자비를 구했습니다. 옆 사람이 보고 있지 않을까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지만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는데 목사님의 설교가 시작되면서 눈물이 멈추었습니다. 그날 예배를 드리는 시간 중에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던 생각들이 구름이 걷히듯 사라지고 나는 가슴속에서 솟는 감동을 느끼며 ‘그래 하나님은 살아 계신거야’라고 고백하고 있었습니다. 11월말 명곡교회에서 있었던 유관재 목사님의 3일 집회에서 구한 책에서 버려야할 21가지를 읽었는데 그것이 제가 청산하고 버려야할 많은 연약함을 구체적으로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자신감을 회복하게 되었고 그동안 짓눌려왔던 근심과 고통에서 해방되는 놀라운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저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이제 저의 내면세계와 하루하루의 생활에 변화를 주시기 시작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밝고 명랑한 마음으로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먼저 인사를 하고 거리낌 없이 다가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니 아이들에게도 칭찬의 말을 해주게 되고 자신을 잘 다스려 화도 절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돈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고 보니 그것에 대한 갈등은 자연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마음에 여유가 생겨난 때문인지 그렇게 아프던 통증도 사라져버렸고 건강을 되찾게 되어 너무나 감사합니다. 아니 너무나 신기하다는 표현이 더 솔직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미워한 시댁식구들과 남편에게 좋은 시간을 만들어 정말 진심으로 용서를 구했습니다. 이렇게 좋은 남편을 미워했다니... 이제 생각하면 참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가족들이 아직은 하나님을 잘 모르지만 저의 변화된 모습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더욱 좋은 아내로 엄마로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기를 마음으로 다짐하며 언젠가 저들도 하나님을 분명 만날 것임을 의심치 않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만나고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눈물과 기도 덕분이었습니다. 한 여인의 지쳐가는 모습을 불쌍히 여기신 주님의 어루만짐 이었습니다. 저는 명곡교회를 출석하게 되면서 하나님께 좀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되었고 이제는 인생에서 삶의 보람이 진정 어떤 것인지를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 제가 그 반열에 설 자격을 얻었다는 것에 감사할 뿐입니다. 가정을 섬기는 일과 교정에서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사랑을 가르치는 일과 이제 나의 신부가 된 사랑하는 명곡교회에서 제가 쓰여 져야 할 일들을 겸손하게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그 일들을 성실함으로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하며 이 증거가 하나님께만 영광이 돌려지기를 소망합니다.
간증문 청탁을 받고 많이 당황하였지만 생각해보니 이렇게 부족한 사람을 통해서도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 마음이 계신 것 같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주님께 받은 은혜를 전합니다.
기억해보니 교회에 첫발을 디딘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이었습니다. 왜 갔었는지 기억은 아련하지만 어떤 선생님이 들려주시던 성경얘기가 너무나 재미있어 그 재미로 다니곤 했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시절 친구의 권유로 다시 몇 번 다녀본 것이 어린시절 교회에 대한 기억의 전부였습니다.
대학졸업 후 초등교사의 직업을 갖게 되었고 결혼하여 아이도 낳고 살면서 일상생활에 별 아쉬움이 없을 정도로 돈도 모아가며 열심히 살았지만 저에게도 남들에게 들키기 싫은 가시와 같은 아픔이 있었습니다. 저는 소심한 성격에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지를 못하고 남들의 실수도 잘 용납해주지 못하는가 하면 자신도 매사에 실수하지 않으려고 하다보니 늘 피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자연히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친구도 없어 늘 외로움을 느끼곤 했습니다. 불평불만도 참 많았습니다. 그러니 매사가 부정적으로 보였고 잘되지 않는 일은 당연히 환경 탓이나 타인의 잘못으로 돌리며 세상에서 하나뿐인 사랑해 줘야할 남편과 시댁식구들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며 미워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허약한 체질로 늘 육신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크게 중한 병은 없었지만 허리에 통증과 발등이 저리고 위장이 쓰려서 늘 고생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온몸에 뼈마디가 부숴 질듯이 아파서 늘 고통스러웠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연약함에 시달리다보니 자연히 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하게 되고 어떤 일에 부딪칠 때면 화부터 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내가 매일 숨쉬고 살아가는 생활 속에서 기쁨과 만족함을 주는 것은 어디에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있다면 통장에 불어나는 숫자와 제산이 그나마 나에게 유일한 위로와 만족이었습니다.
기독교가 어떤 종교인지는 지식으로 알고는 있었지만 굳이 종교를 가져야 하는 이유도 그런 구체적인 생각도 저는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여름 시누이가 ‘기독교방송을 보면 참 좋은 내용들이 많다’고 권하기에 별생각 없이 시청하게 되었는데 문득 목사님들의 설교가 저의 마음을 끌었습니다. 그래서 그 후로 기독교방송을 자주 시청하게 되었고 말씀을 들을 때 마다 마음을 움직이는 무언가를 느꼈지만 그러나 굳이 교회에 나가고 싶은 마음은 들지를 않았습니다. 만약 나가더라도 나이가 들어 할일이 없어질 때 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었습니다.
만일 제가 교회를 나갈려 해도 가족들이나 주위환경이 그것을 받아들이기는 힘들 것이라 생각했고, 그리고 교회를 다니게 되면 헌금을 한다는데 그 돈이 아까울 것 같아 교회를 다닌다는 것은 생각지도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의 생각을 무시하듯 너무나 갑자기 찾아 오셨습니다. 2005년 10월 어느 날 시누이를 따라 정말 우연 교회를 가게 되었는데 찬송을 듣는 순간 갑자기 마음이 뜨거워지더니 누군가 오랫동안 내안에 쌓이고 싸여온 멍든 마음과 고통의 짐을 감싸는 것 같았습니다. 소리 없는 흐느낌이 이런 것일까요 어느새 눈물이 가득하여 뺨으로 흐르면서 나는 ‘아! 어쩌면 하나님이 살아 계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11월 20일 같은 학교에 근무하던 문선생님의 전도로 명곡교회에 나오게 되었는데 자리에 앉아 강단현수막에 적힌 하나님이란 글자를 보는 순간 그것이 제 가슴에 비수처럼 꽂히며 갑자기 알 수 없이 눈물이 다시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눈물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주님을 불렀습니다. 지난 날 저의 이기적이고 교만스럽던 모습들이 하나하나 생각나기 시작했고 비록 볼 수는 없었지만 저는 그분에게 용서의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이기적인 생활들과 그리고 상처주고 미워한 남편과 시댁식구에게 정말 미안했고 이러한 죄를 용서해 달라고 울면서 주님의 자비를 구했습니다. 옆 사람이 보고 있지 않을까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지만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는데 목사님의 설교가 시작되면서 눈물이 멈추었습니다. 그날 예배를 드리는 시간 중에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던 생각들이 구름이 걷히듯 사라지고 나는 가슴속에서 솟는 감동을 느끼며 ‘그래 하나님은 살아 계신거야’라고 고백하고 있었습니다. 11월말 명곡교회에서 있었던 유관재 목사님의 3일 집회에서 구한 책에서 버려야할 21가지를 읽었는데 그것이 제가 청산하고 버려야할 많은 연약함을 구체적으로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자신감을 회복하게 되었고 그동안 짓눌려왔던 근심과 고통에서 해방되는 놀라운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저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이제 저의 내면세계와 하루하루의 생활에 변화를 주시기 시작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밝고 명랑한 마음으로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먼저 인사를 하고 거리낌 없이 다가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니 아이들에게도 칭찬의 말을 해주게 되고 자신을 잘 다스려 화도 절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돈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고 보니 그것에 대한 갈등은 자연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마음에 여유가 생겨난 때문인지 그렇게 아프던 통증도 사라져버렸고 건강을 되찾게 되어 너무나 감사합니다. 아니 너무나 신기하다는 표현이 더 솔직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미워한 시댁식구들과 남편에게 좋은 시간을 만들어 정말 진심으로 용서를 구했습니다. 이렇게 좋은 남편을 미워했다니... 이제 생각하면 참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가족들이 아직은 하나님을 잘 모르지만 저의 변화된 모습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더욱 좋은 아내로 엄마로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기를 마음으로 다짐하며 언젠가 저들도 하나님을 분명 만날 것임을 의심치 않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만나고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눈물과 기도 덕분이었습니다. 한 여인의 지쳐가는 모습을 불쌍히 여기신 주님의 어루만짐 이었습니다. 저는 명곡교회를 출석하게 되면서 하나님께 좀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되었고 이제는 인생에서 삶의 보람이 진정 어떤 것인지를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 제가 그 반열에 설 자격을 얻었다는 것에 감사할 뿐입니다. 가정을 섬기는 일과 교정에서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사랑을 가르치는 일과 이제 나의 신부가 된 사랑하는 명곡교회에서 제가 쓰여 져야 할 일들을 겸손하게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그 일들을 성실함으로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하며 이 증거가 하나님께만 영광이 돌려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