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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와 면류관(노명현장로)

  • 박대봉
  • 조회 4160
  • 3호
  • 2006.05.19 11:08
“십자가 없이는 면류관(영광)도 없다”(No Cross, No Crown). 이것은 윌리엄 펜(William Penn)이 지은 책의 제목에서 나온 말이다. 그는 영국의 퀘이커교도의 지도자로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건너가 1682년에 “우애의 도시”라는 필라델피아(Philadelphia)를 세웠고 그의 이름을 따서 주 이름을 펜실베이니아(Pennsylvania)주라고 하였다.
  고난주간을 전후해서 주님이 지신 십자가를 생각하면서 이 말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예수님께서도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십자가를 지기는 싫어하고 영광만 취하려고 하고 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우리도 그 십자가에서 함께 죽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4). 그렇다면 이제 우리 속에는 다시 사신 그리스도가 살아 계시며 마땅히 그 분이 우리의 주인이시다. 그러나 실제 우리의 삶은 여전히 우리의 자아가 살아 있으며 우리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기성찰을 해보아야 할 것이다.
  십자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늘 묵상하며 살아야 할 구심점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흘리고 돌아가심을 생각하면 우리의 삶의 환경에 관계없이 감사할 수 있을 것이다. 어렵고 힘들 때 십자가를 생각하면 새 힘과 용기를 얻고, 남을 미워하는 마음이 생길 때 십자가의 사랑은 우리로 회개하게 할 것이다. 또한 형제를 용서하지 못할 때 십자가상의 용서가 우리에게 도전이 될 것이며, 우리가 교만해질 때 창조주이신 주님이 피조물인 인간에 의해 해받으신 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기독교는 역설(paradox)의 종교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가르침은 세상의 논리와는 정반대이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 16:25). 즉, 예수님을 위해서 우리가 죽어야 산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 23:12).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막 10:43-44). 이 말씀은 높아지고 싶은 사람은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남을 섬기는 종의 자세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약할 그때가 곧 강함이라”(고후 12:10). 우리는 할 수 없고 오직 주님만이 하실 수 있다는 믿음으로 두 손을 들 때 주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나타나서 우리가 강한 자가 된다.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전 10:24) 세상의 사람들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나 그리스도인은 남의 유익을 구하는 이타적인 삶을 살라고 명하신다.
  죽고자 하면 살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고, 으뜸이 되고자 하면 종이 되어야 하고, 내가 약해야 강하게 되고, 이기적인 인간에게 이타적인 삶을 살라는 이 가르침은 모두가 역설이다. 
  이러한 역설적인 삶, 다시 말해서 세상 사람들과 거꾸로 사는 삶은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은 사람은 살 수가 없는 삶이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하여 죽으신 것 자체가 역설이다. 그래서 이런 역설적인 삶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 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예수께서 사신 것이라”(갈 2:20)는 체험과 고백을 한 사람 만이 살 수 있는 삶이다. 십자가를 생각하며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면서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졌던 사도 바울의 삶과 “십자가 없이는 영광도 없다”는 펜의 고백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살아야 할 삶의 자세일 것이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는 사도 바울의 고백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동일한 고백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 땅에서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 덜 누리고 사는 것 같은 생각이 들 때 천국에서 영원히 살 영광(면류관)에 대한 소망이 우리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우리 모두 다시 한 번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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