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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가 떠난 이유

  • 이금용
  • 조회 4342
  • 일반
  • 2011.01.14 10:42
도심의 소음을 탈출하여 기분 좋게 달려보는 시골 길. 미루나무 끝으로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 펼쳐진다.
병아리들의 재잘거림이 쉴 줄을 모르는데 문득 한 아이가 부르는 노랫소리가 합창이 되어 맑은 하늘로 퍼져간다.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 평화와 아늑함 속으로 차는 계속 달리고 그 선율에 취하다 문득 지금은 아스라해진 어린 추억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동네 신작로에는 여름이면 그늘을 만들어 주던 넓은 잎의 오동나무가 있었다.
매미 온종일 자지러지던 그 나무 밑에는 가끔씩 동네 어른들이 열을 올려가며 장기를 두시던 널따란 평상이 있었는데 온 여울 모든 것이 정지된 듯한 정오 어느 날 난 거기에 누워 올려다본 하늘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한참을 보고 있으면 파란하늘이 내게로 쏟아져 내리다가 어느 순간 내가 높은 창공을 송골매처럼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 시절에 동네에는 아이들이 많았다. 가족계획이 없던 때라 한 집에 식구가 대 여섯은 보통이고 여나믄 명이 넘는 집도 그렇게 귀하지는 않았다. 요즘에 이런 대가족이 있다면 참 신문에 날 일이기도 하지만.

공부 지옥에서 살아가는 요즘 아이들과 달리 그 때에는 뛰노는 시간도 많았다. 학교를 파한 후 마루청에다 책가방을 던져놓고 나면 그 때부터는 온통 우리들의 빛나는 세상이었다.
죽이 맞는 악동들은 언제나 숫자가 넘쳤으며 그들이 가는 곳마다 무궁무진하여 디즈니랜드 놀이동산이 부럽지가 않았다.

온종일 머루랑 달래랑 따먹고 무덤가에 유난히 많이 피던 피비를 한 움큼씩 뽑아 껌처럼씹으며 돌아오곤 했는데 지금 아이들이 먹는 인스턴트과자와 어찌 비교가 되겠는가! 보슬비라도 내리는 날이며 소 풀을 먹이는 아이를 따라 개구리 사냥이 시작되었고 생포된 개구리는 철사에 끼워져 즉석 바베큐 요리가 만들어지곤 했는데 모두들 둘러앉아 입이 새카맣게 되어도 그 맛은 언제나 일품이었다.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집 생각이 해가 지기 전에는 왜 나지를 않았을까?

아차! 싶어 조그만 가슴이 철렁하지만 그러나 이미 때늦은 후회. 집 담벼락 밑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 결국 엄마에게 잡혀 앞으로 절대라는 사나이의 맹세를 걸고 풀려나지만 그러나 그 다음 날 담 넘어 들려오는 악동들의 뻐꾸기 신호(우리들만 아는 )에 지난밤 엄마와의 약속은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곤 했었다.
 
어디 그 뿐이겠는가. 아랫동네와의 전쟁놀이는 얼마나 재미있고 스릴이 넘쳤던가.
타버린 하얀 연탄을 무기로 삼아 기세 좋게 돌격 앞으로! 했다가 후퇴 소리를 듣지 못해서 적군에게 잡히기라도 하는 날에는 죽였다고 복창해야 하는 것이다. 잠자리에 들 때면 이불 쟁탈전을 벌이고 나서야 잠이 들곤 했었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아쉽고 부족한 것들이 많았던 시절이었다. 배불리 먹지를 못했었고 가진 것이 없었기에 무엇이든 이빨대신 잇몸으로 살았으며 십리가 넘는 길을 언제나 걸어 다녔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그 때가 향수처럼 그리워지는 것은 거기에는 구수한 동네 아저씨가 있었고 집집마다 굴뚝에서 저녁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던 그런 넉넉함이 있었기 때문일 게다. 정말 타임머신이라도 있다면 그리운 얼굴들도 한번 만나보고 뛰어 다녀보고 싶은 곳이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에게서 이것들이 하나 둘 씩 멀어져갔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새마을운동이 성공리에 달성되고 국민소득이 높아지고 모든 것들이 그래프의 상승곡선을 기분 좋게 타고 있을 때, 아니 그보다 우리 스스로의 위대함에 도취되어 더욱 더 땀을 흘리며 노력한 대가로 우리 집안에 T.V 냉장고가 들어오고 자가용과 문명의 이기들이 정신없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을 때 그 서슬에 밀려 하나 둘씩... 이웃의 담 넘어 오가던 우리의 인정도 사라져갔던 것이었다.
 
이제 우린 옆집 아저씨의 얼굴을 모르며 우리 집 아이가 동네 아이들과 친구가 아닌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간밤에 아이가 이불에 지도를 그려도 키를 쓰고 소금을 얻으러 갈 이웃집이 없으며 동네 강아지도 우리를 보고 더 이상 꼬리를 흔들지 않는다.
 
지금 누리는 조그마한 편리함 때문에 우리는 주위에 귀중한 것들을 너무나 많이 잃었는지도 모른다. 그 시절 우리가 하나하나가 보석처럼 귀하지 않은 것이 없었는데 그것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기에 귀한 줄을 몰랐던 것이다.
우.리.가. 잃.은. 것.은. 자.유.며.우.리.에.게.서. 멀.어.져. 간.것.은. 하.나.님.이. 주.셨.던. 평.화.였.다. 산.에. 사.는. 메.아.리.가. 떠.나.간. 이.유.는. 벌.거.벗.은. 붉.은. 산.에. 살.수.가.없.었.기. 때.문.이.라.고. 노.래.한.다.
 
메아리가 간곳은 어디일까? 우리가 정신없이 뛰어 다닐 때 메마른 우리 곁에서 살수 없어 떠나버린 그 넉넉했던 평화는 대체 어디로 갔을까? 그런데 오늘 우연히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노래 속에서 그 평화를 발견했던 것이다.

다행이 멀리 가지는 않았었던가 보다. 나는 이 평화가 다시 한 번 우리의 메마른 삶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땅을 적시는 늧은 비처럼 쉼없이 내려 삭막하고 갈라져있는 우리의 대지를 촉촉이 적셔 주었으면 한다.
 
그렇다! 지금도 늦지를 않았다 오늘 부터라도 우리들 마음이 주님 사랑의 불씨가 되어서 세상을 데울 수만 있다면 우리에게서 멀어져갔던 그 평화는 우리의 마을에 우리의 식탁에 우리의 마음에 이슬비처럼 다시 내릴 것이다.

대지 위에 비가 내리고 있다. 정신없이 달려왔던 우리의 모습을 식히듯 소리 없이 비가 내린다. 그리고 그 빗속으로 8월이 지나가고 있다. 조용히 귀 기울여보면 나무에서 과일이 익는 소리가 들린다. 약동의 푸러름을 지나 이제 모든 생명들이 성숙해져가는 계절이다.

거친 길들을 숨 가쁘게 달려오다 보니 어느덧 인생 5학년이 되어버린 우리들. 아직도 갈 길이 먼 우리들의 여정이지만 그래도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날에는 주님이 오시던 날 하늘에서 들리던 소리 그 평화의 의미를 한번 되새겨 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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