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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곡유치원 교회소식 오시는 길
 

일상 그 자체가 기적이다-2

  • 이금용
  • 조회 4498
  • 일반
  • 2011.01.06 10:57
강물위로 서서히 흐르다 소용돌이에 급히 빨려드는 나뭇잎처럼
고신대 좁은 복도에는 인생 마지막 길로 빨려 들법한 나이의 사람들이
즐비하게 앉아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부터, 그 줄 틈에 갑을과 다를 바 없는 비슷한 나이의 비슷한 얼굴을 하고
우리 부부가 앉아 있었다. 더구나 비슷한 이유로.
생을 살면서 이런 곳에서 이렇게 초라하게 앉아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해 본적도 없었었는데, 아무리 지난날들 중에 격정의 파랑이 나를 타고 넘었던 그 시간 이었을지라도..
 
비스듬히 앞쪽 문 너머로 늙수구레 보이는 교수인지 의사인지(무엇이던 무슨 상관 이겠냐마는) 생면부지의 저 사람 입에서 나오는 한 마디를 애타고 기다리고 있다니,
잠시 후면 그 사람의 한 마디가 길게 걸어온 우리 여정을 한 번에 풍지박산
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길게 늘어나는 시간을 좁은 복도에서 힘겹게 견디며 속으로는 이럴 수는 없다는
생각만 온통 혼돈스럽게 맴 돌았다.
 
주님이 우리 부부를 이렇게 하잘것없이 푸대접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야속했지만
깊이 생각하고 서운하고 그럴 시간도 없이 째깍 째각 물 스며들듯 다가오는 엄연한
현실 앞에 내 머리는 백치처럼 하얗게 되어갔다.
'만약, 아내를 잃게 된다면 이 땅에서 무슨 영화인들 위로가 되겠는가 싶었다.
아니 위로에 위로를 더해준다 해도 혼자 누려야한다면 그것은 차라리 슬픔이고
고통일 것이다.'

최근 나의 제일 즐거움은 인생 굴곡이야 많았지만
그래도 아들 둘 믿음으로 잘 키워 논 아내,
이제야 알콩달콩 일상의 자질구레한 누림을 지긋이 바라보는 것인데.
그것이 또한 나의 보람이기도 하다. 아들과의 통화를 제일 좋아라하는 아내.

'주님..
소박한 이런 삶, 만일 이것을 앗아가신다면 우둔한 저에게 무엇으로
주의 자비를 설명하실 것입니까.'

아내는 옆에 앉으라고 손을 내밀지만, 옆에 앉아서 무언가 위로의 손이라도
꼭 잡아주고 싶지만 그러나 차마 아내의 얼굴을 쳐다볼 수가 없어 옆에 앉지를 못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왔다갔다하며 나는 아마 허공을 걸어 다니고 있었다.

힘겹게 능선을 오르던 십 수 년의 시간들이 휙 휙 지나간다.
‘그래 힘들었었지..’
그러나 아이들과 희망이 있었기에 울며 넘고 웃으며 넘고..
그렇게  막연한 기대로 살아왔던 아내였는데.. 생각이 미치니
아~~
 
어떻게,, 좋게든지 안 좋게든지 곧 선고와도 같이 알게 될 시간을 앞두고
몇 번이고 생각하고 반복했던 해야 할 일이 생각났다.
‘그러나 너무 늦었나.. 소용없는 일일까..’ 생각이 아무렇게나 왔다 갔다 한다.
아들의 여정에 차질이 생긴다 해도 조금의 희생을 강요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강물은 잔잔해졌다. 이번만큼은 오직 아내와 나를 위해서..

기도를 한다.
좋은 선고가 내려지기를. 별거 아니기를 그래야 이어지는 시간에
보람과 누림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행한데도 너무나 처절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
 
격정의 순간이 지나면 사람은 물처럼 담담하고 초연해진다.
일상의 호흡 속으로 다시 들어가 예전의 습관대로 계획대로 살아간다.
격정의 시간에 소원이 느낌으로 격하되는 듯 해진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여정의 남은 시간을 셈하고 짐작해보는 습관이 생긴다.
우리 나이라면 대부분 해보는 생각일 것이다.
설사 오래 산다고 해도 감동과 기쁨을 지금처럼 느끼고 누릴 그 나마의 시간은
별로 많지를 않은 듯하다. 모세의 임종처럼 마지막까지 육과정신이 정정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좋으련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서 한두 가지 잊혀 지지 않는 기억도 생겼고,
소중히 여겨야하는 마음과 일상 깊은 의미의 시간이기도 했었고..
아내는 안민 과수원에서 서울 아들  김치 담그러 이틀이나 부재중이고, 나는 홀로
호젓한 시간 그 시간들을 기억해보며..

그래도 지금 떠오르는 단어는 그 분께서 언제나 그러신 것처럼
"감사.."
그러나 힘들게 하신 뜻을 헤아리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릴 듯하다.
문득 성탄절을 생각하며 12월의 달력을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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