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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곡유치원 교회소식 오시는 길
 

책임

  • 이금용
  • 조회 2655
  • 일반
  • 2006.05.12 11:20
신명기 마지막장을 읽고 그분을 묵상해본다.
작렬하듯 태양 빛은 쏟아져 내리고 시간이 멈춘 듯 침묵이 흐르는 비스가산 정상에서 그는 장엄하게 펼쳐진 여리고 평지를 내려다보며 오랫동안 움직일 줄을 모르고 있었다.
비록 백발 성성한 일백 이십 세 노령의 몸이었지만 그의 눈은 아직도 감히 누구도 범할 수 없는 정기가 서려 있었고 높은 산을 올라왔음에도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마치 저 아래로 펼쳐져 있는 마지막 광경을 모두 가슴에 담기라도 할 듯이 찬찬히 훑어 내리고 있었다.

그는 모압 평지를 걷기 전부터 옛날 그의 형처럼 이 산을 다시 내려갈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참 오래 전의 일이었다. 호르산 정상에서 형의 옷을 벗겨 조카에게 입히고는 형제와의 마지막 이별 앞에서 얼마다 가슴이 메였었던가..
오랜 세월을 함께 하며 자신을 도왔었던 형의 임종을 지켜보며 세월의 무상함을 느꼈었는지도 모른다.

저 아래로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단의 모습이 선명하고 요단강건너 아스라이 소알 까지 보인다.
아~ 얼마나 꿈에도 그리던 곳이던가! 마지막 숨만 남아 있으면 기필코 가야할 약속의 땅,
수많은 전투와 역경을 넘어 이제야 다다른 곳이건만 그런데 그는 안타깝게도 요단강을 건널 수가 없다.
함께 싸웠던 사람들을 다 떠나 보내고 이곳에서 마지막 생을 정리해야 하는 것이다.

하늘에 한줄기 바람이 스쳐갈 때,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기억마저 희미한 추억들과 파란만장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그의 출생배경과 조국을 잊지 말아야하는 이유를 유모를 통해 명심하고 있었다. 왕자의 신분으로 자라났던 그에게 노예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젊은이를 힘들게 했을까..
그것은 사춘기 성장과정에서 말 할 수 없는 갈등이었지만 그 자신도 해답을 알지 못한 채 누구에게도 속마음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그 날 우연히 어떤 사람이 동족을 학대하며 개 패듯 때리는 광경을 목격하지만 않았어도 그 갈등은 언제나 고민 속에 묻어 둔 채로 그렇게 세월이 흘러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자신 속에 흐르고 있는 피는 속일 수 없는 탓이었을까,
피투성이인체로 쓰러지는 한 노예의 얼굴을 보는 순간 갑자기 솟아오르는 젊은 분노를 억제할 수가 없었다.
마침내 폭발해버린 의분이 비열한 학대자를 쳐죽이고 그리고 그는 영광의 자색 옷을 던져 버렸던 것이다.

그를 감싸왔던 모든 현실들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지만 그러나 후회는 없었다.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는 순간에(히11:24) 오랫동안 무거웠던 양심의 멍에도 함께 벗어졌고 두려움과 자유가 교차하면서 그는 쫓기 듯이 광야를 계속 달렸다.
그의 등뒤에서 불꽃같은 눈동자로 주시하고 계시는 능력자의 시선을 까맣게 모른 채....

그곳은 모든 것이 낯설고 서툰 것들 뿐 이었지만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익숙해져갔고 그리고 세월은 흘러갔다.
그는 이젠 사막의 기후와 곤충의 이름 물이 나오는 장소와 양을 치는 법 그리고 광야에서 밤을 지나는 법 등을 통달한 팔십 세의 노련한 사막 인으로 변모해 있었다.
아내를 만나고 자식을 얻은 것은 사십 년 객지생활에서 이제 그에게는 큰 위로와 소중함이 되었다.

처음엔 힘들고 외로웠지만 이젠 제법 정착도 되었고 하루하루가 평화롭고 행복했다.
옛날의 일들은 한 갓 꿈같이 느껴질 뿐 이제 아무런 미련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호랩산 에서 양을 치다가 그는 매우 놀라운 일을 만났다.
처음 시선을 집중시킨 것은 불타고 있는 떨기 나무였다. '아니! 나무가 타지를 않다니?'
순간 가슴 서늘한 두려움을 느꼈을 때 그는 범할 수 없는 음성을 들었었고 명령대로 그 앞에서 신을 벗었다.
그 분은 "스스로 있는자"라고 하셨다. 그 사건이 인생에 중대한 전환점이 될 줄이야.

그를 부르셨던 것이다.
엄두가 나지를 않아 여러 번 핑계를 대며 거절했지만 그분은 집요하게 옛날의 땅으로 다시 돌아갈 것을 권했다. 동족들을 위함이라고 하셨다.
'아니 무엇을 포기하란 말씀인가'
어떻게 이룬 가정이며 행복인데 참으로 한번도 생각해 본적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명령을 결국 누군들 거역할 수 있겠는가!
그가 받은 것은 지팡이였다.
 사십 년만에 돌아온 고향은 많은 것들이 변해 있었고 피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그가 형이라 부르던 사람은 왕이 되어 자기 백성의 목에 멍에를 씌우고 그 줄을 거머쥐고 있었다.

그들이 마주 섰을 때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서로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비록 목동의 남루한 옷차림에 구부러진 지팡이를 들고 있었지만 왕도 그의 얼굴에서 옛날의 그가 아닌 함부로 범할 수 없는 무언가를 느꼈을 것이다. 참 꿈만 같은 일들이었다. 여호와의 시키는 데로 지팡이를 움직였을 뿐인데 놀라운 일들의 연속이었다. 하수가 피로 변하고 개구리 떼, 파리 떼, 메뚜기 떼로 땅을 덮으며 독종과 온역과 우박을 내리며 마침내 장자를 멸함으로 민족의 대 이동은 시작되었고 배수진의 급박한 상황에서 홍해가 갈라졌던 경이로운 사건은 지금도 그를 말할 수 없는 흥분 속으로 몰아 넣는다.

그런데 사건은 풀 한 포기 물 한 방울 구경할 수 없는 광야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했던가 끝이 없는 백성들의 이기심은 조그만 불편에도 견디지를 못하고 언제나 같은 불평과 원망을 뱉어내고 있었다.
그 날도 타는 듯한 태양 아래서 갈증으로 목이 타옴은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뜩이나 얼마 전 사랑하는 누이를 잃고 마음이 무척이나 상심해있을 때인데 그들은 전번 여리고 정탐꾼들이 돌아왔을 때처럼 시끌벅적하니 떠들며 원망과 적개심을 더러 내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들을 향하여 끊임없는 애착으로 쏟아 부으시는 그분의 사랑을 잊은바 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그 날 마음을 다스릴 수가 없었다. 결국 끓어오르는 분노는 마침내 폭발하고 말았다.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민20:10) 분쟁은 그의 자제력을 상실케 만들었고 분노를 담은 그의 지팡이는 반석을 두 번 치고 말았던 것이다.
비록 샘물은 솟아났었지만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다. 안타깝게도 중재자로써의 자신을 잊고 말았던 것이다.

아니 어쩌면 많은 기적들이 연속되는 동안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신의 영광과 권능이 자신들의 손안에만 있는 듯한 착각 속으로 조금씩 빠져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분명히 거역이었고 이탈이었다.
그의 분노가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왜곡 시켰던 것이다. 아! 어쩌겠는가 이미 엎질러진 물처럼 엄중한 하나님의 질책을 피할 수는 없었다.
"네 눈으로 보게는 하겠거니와 너는 거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신43:4) 그는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그때의 준엄한 하나님의 목소리를 결코 잊은 적이 없었다.

MOSES!
그는 아마 비스가산 끝에 서서 하늘을 보며 탄식했을지도 모른다.
비록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고 여전히 많은 일들을 맡기셨지만 그가 져야할 책임은 분명히 물으셨던 것이다. 이 사실이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의연했던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 그러나 마지막 가나안땅을 바라보는 모세의 슬픈 눈에서 우리는 인간적인 연민을 느낀다.

우리는 자신의 인생에 대하여 말할 수 있다...
그리고 하루하루의 시간과 삶의 질을 선택 할 수도 있다. 그러기에 기쁨과 슬픔과 분노와 열정을 우리의 삶 속에서 표현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만일 주님을 향한 우리의 열정과 헌신이 단지 그때 그때의 기분과 감정에 치우쳐 행동하여 진다면 주님은 오늘날 우리에게 질문을 하실 지도 모른다.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은 연고가 무엇인지"를 그리고 언젠가는 그 책임을 함께 물으실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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