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이웃은 대부분 공동체 안에서 만나 형제와 자매로 맺어진 사람들입니다. 그 중에는 얼마 전에 알게 된 사람도 있고 오랜 세월을 함께한 십년 이십년 지기도 있습니다. 그들을 만날 때마다 참 좋은 사람들이라는 여겨집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성실하고 예쁘게 자신들의 인생을 가꾸어가는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바쁜 삶 속에서도 후진들을 챙기고 주일을 준비해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참 청지기답다고 여겨지니 하물며 주님께서는 더욱 그렇게 여겨주시지 않을까 생각이듭니다.
그러나 수직에서 수평으로 옮겨본 우리들끼리의 관계와 섬김을 모습을 보면 좀 아쉬운 일면도 있는 듯합니다. 자신 또한 이런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음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최고의 고수"라는 제목의 설교가 생각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어떤 부분에 고수가 되어야하는 이유를 말씀하셨는데 한 가지 기억나는 것은 사사시대 "사람들이 저마다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는 말씀입니다.
생각해보니 요즘 제가 경청해야할 말씀이었습니다. 공동체를 향한 열심에는 변함이 없는데그 열심히 저마다 옳은 대로 행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대체로 그럴 때 오해와 갈등이 생기는 법인데 자신을 쳐다보니 매사에 그런 안간힘으로 섬기는 것 같아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작은 가시하나가 손톱에 박히면 스칠 때마다 움찔 놀라고 신경이 쓰이는 것처럼 조그마한 사건 하나가 은혜로웠던 마음을 시들게 하고 긍정적인 모든 생각을 파괴시키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소망과 부활이 없다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자요.." 바울의 고백처럼 혹시 우리가 소망과 믿음이 없이 신앙행위에만 열심을 내고 있지는 않은가? 자문해봅니다. 시선을 좀 더 넓게 가져서 주님의 약속을 다시 새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 때문에 주일을 성수하며 믿음의 생활을 하는 것인데 본질을 망각하고 힘들게 살아갈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세상 사람들은 어떤 생각들을 할까요? 남들이 다 쉬고 즐기는 주일 아침부터 교회에 나가서 자신의 물질까지 바쳐가며 종일 힘들게 섬기고는 때로 서로 다투고 마음이 상하니 참 이상한 사람들이다고 생각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상이 알지 못하는 비밀을 보여주셨습니다. 죽음에서 삶으로 인도해주시려고 폭풍이 휘몰아치던 바다에 구원의 배를 보내어주셨습니다. 그 배를 타게된 우리들은 이제 두려워하지 않아도 무사히 육지에 닿을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건짐을 받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구조선 바닥에 누웠을 때 다시 살았다는 기쁨에 세상은 온통 내 것 이었습니다. 함께 건짐을 받은 사람끼리 부둥켜않고 울었습니다. 미움이나 다른 생각은 없었습니다. 죽음의 순간에 다시 한 번 생명의 기회를 받게 되었으니 오직 감격과 감사로 가득할 뿐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감격도 희미해지나 봅니다. 어찌했던 살았습니다.
우리의 공로나 행위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오직 주님의 사랑과 긍휼히 여겨주심으로 구원의 방주를 타게 된 우리들이기에 좀 더 너그럽고 겸손한 마음으로 넉넉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좀 더 넓은 시각을 가지고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신앙인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져봅니다. 비록 환경은 열악하고 좀 어려워도 마음은 부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좀 더 위하고 화목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극적이었던 감격의 순간이 일상에서 지속될 수는 없겠지만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이 땅에서 우리 시간이 그렇게 주야장창 길지는 않습니다. 석양이 드리워지는 시간은 도적과 같이 오리라 짐작합니다.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여러가지 생각하고 상심하고 할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장차 들어가게될 약속의 땅을 기대하고 이런 저런 일도 다 주님을 위한 일이다고 생각하고 넉넉한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총장님의 말씀처럼 지금은 남은 시간을 셈하면서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한 시간이 아닌가 생각을 해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