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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캄보디아 여행 기행문

  • 명곡교회
  • 조회 4230
  • 2014.05.01 17:34

캄보디아, 베트남 기행문

200년 6월3일~6월8일 신정수

년 초부터 교회 장로님들의 단합겸 해외여행을 떠나자하여 중국 황산으로 정하고 추진하던 중 독감 바이러스에 의해 중국행을 중단하고 캄보디아와 베트남 여행으로 변경되었다.
드디어 6월3일 아침 6시30분 교회에서 모여 목사님의 잘 다녀오라는 인사와 함께 기도로 출발하였다. 목적지는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지와 베트남의 하롱베이 여행을 드디어 출발하게 되어 가슴이 설렜다
아침 10:00~ 김해를 출발하여 4시간 30분 정도 비행 끝에 베트남 호치민시의 탄손누트
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한국과 시차는 2시간이며 호치민시는 옛 명칭 사이공이지만 월남전 당시 북부의 승리로 베트남의 영웅 호치민의 이름을 따 호치민 시로 불러지고 있다.여기서 다시 캄보디아 씨엠립으로 가야한다. 비행기시간은 2시간40분 뒤 공항 면세점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지루해 사다리타기로 내기를 걸어 번번이 꽝인 윤장로님의 하소연과 함께 비싼 생수 한 병씩 먹고 생수 한 병 4달라 너무 비싸다. 그렇게 씨엠립으로 가는 비행기로 갈아타고 1시간여 비행 끝에 앙코르 유적지가 있는 캄보디아 씨엠립에 도착하여 현지가이드를 만나 버스로 10분이동하여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캄보디아 고유 민속 춤 공연을 보면서 이국의 맛을 보며 저녁식사를 끝내고 호텔로 이동 첫 날 여장 풀었다.

여기서 잠시 캄보디아를 소개하면

1인당 국민 소득 500달러. (1 년에 버는 돈이 60만 원 정도) 문맹률 52%. (국민의 반 이상이 글을 모름)유아 1000명당 사망인구 106명. 평균 수명 48세. 북한보다 5배나 못산다. 세계 최빈국중 하나인 캄보디아에 대한 통계자료중 일부입니다. 수치로만 본다면 정말 가난하고 살만한 곳이 못되는 곳입니다. 게다가 다년간 크메르 루즈(반란군)와의 내전으로 피폐해진 경제와 국토, 킬링필드의 주민학살과 흉흉할것 같은 민심(비록 이제는 끝난 일이지만…….) 최근의 내정 불안까지……. 베트남 전쟁의 가장 큰 피해국으로 베트남 전쟁당시 베트콩 게릴라들이 캄보디아 정글을 타고 침공하게 되어 미국이 정글에다 6억 개가 넘는 플라스틱 지뢰를 비행기로 뿌려 국토가 지뢰밭이 되어 사람 접근이 불가하게 되고 그 피해로 발목이 절단된 사람이 부주기 수로 곳곳에 모여 구걸을 한다. 캄보디아는 유명한 킬링필드의 나라이며 수차례의 정권다툼을 거쳤고 지금은 시아누크의 아들 시하모니가 국왕을 물려 받아있고 훈센총리가 집권을 하고 있다. 국민소득 500불의 세계 뒤에서 30번째 최고 빈곤국이라 한다. 씨엠립은 13세기 때는 도시가 번창하여 인구 100만이 넘는 도시였고 그 당시 영국 런던은 8만의 도시였다. 현지 가이드의 말

6월 4일
아침 9시 30분 호텔 앞에 대기 하고 있는 버스를 타고 앙코르왓에 도착 출입증 발급 사진을 찍고 경내에 들어서다. 1.5km 가까이 걸어 들어가니 앙코르왓 전경이 한눈에 바라보이다. 말 그대로 앙코르왓은 한폭의 그림과 같다.
캄보디아 옛 조상 크메르 왕국은 (802~1431)전성기 당시 이곳 앙코르에 인구 100만이
넘는 거대도시를 이루며 세계 7대 불가사의에 하나인 앙코르 유적을 만들었다. 그리고 1431년 크메르 왕국이 멸망과 동시에 430년 동안 밀림 속에 숨어있다 1861년 프랑스 고고학자에게 발견되었다고 한다. 근처 산이 없고 돌도 없는 늪지대에 최고 높이 65m의 거대한 돌 사원의 유적을 세웠고 지금도 아름다운 여인이 압살라 춤을 추며 튀어 나올 것 같은 섬세한 부조와 조각들 돌덩이 하나하나 모두 명작 명품의 예술 작품으로 직접만나보지 않으면 이해가 안 되고 말과 글로서 표현이 안 되는 앙코르왓 사원 그 조각들을 한사람이 했다한다. 그 사람이 죽으면 또 뒤를 이어 하고 그렇게 완성되었다고 한다. 하루 1만 명의 관광객이 다녀간다는 앙코르왓 세계 유명인들이 앉아 던 돌계단에 나도 앉아 중앙 탑을 올려다보며 마누라 사진 한 장 찍고 돌다리를 건너가다.
( 앞에 첫번째 사진)

앙코르 유적군은 너무나 거대하고 많은 유적지가 산재해 있어서 그냥 제일 유명한 유적지인 "앙코르왓"을 전체 유적군의 통칭으로 부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앙코르왓은 독립된 유적지의 하나입니다. 다른 유적들도 제각기의 이름이 있고. 힌두 사원으로 지어져 "비슈누"신에게 봉헌된 앙코르왓은 81 ha 에 이르는 방대한 넓이……. 웅장하게 솟아있는 그 모습을 보면 종교적인 건축물이라기보다는 강력한 왕권을 상징하는 위압적인 궁전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막상 건물 안에 들어서니 복도마다 새겨진 섬세한 조각들이 또 한 번 놀라게 한다. 힌두교 신화의 장면들을 부조로 새겨 넣은 복도를 따라 걷다보면 위압감을 언제 느꼈을까 싶을 정도로 그 섬세한 여성적 아름다움에 매료됩니다. 복도를 따라서 중앙으로 향하면 수미산을 상징한다는 중앙 탑에 이르게 됩니다. 불교와 힌두교의 세계관에 의하면 수미산은 세계의 중심이며 수많은 신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고 합니다. 앙코르왓 중앙에 수미산을 지은 쟈야바르만 2세는 현실 세계에 신들의 세계를 강림시키고자 한 모양입니다. 그 바람이 무엇이었을까요? 왕국의 안녕? 권력의 유지? 아니면 사후 세계의 행복?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겠지요?

타프롬 사원

툭툭이(오토바이 뒤에 리어카를 메달아 관광객을 태우는 택시)에 올랐다 덜커덩 거리며 신나게 30분 정도 달려 타프롬 사원입구에 내려 숲 사이로 걸어 들어가는데 길옆에 5명의 다리 절단된 사람들이 악기를 타며 아리랑을 구슬프게 부른다. 가이드 최홍민씨가 연장자중 2명이 팁 1달러씩 주라하여 팁을 주니 고맙다한다. 이들은 그 돈으로 부상당한 사람들과 모여 가장 싼 쌀을 팔아 함께 나눈다한다. 이곳 타프롬 사원은 자야 바르만 7세가 자기 어머니를 위해 만든 사원이나 완공 몇 년을 앞두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4면 벽에 수백 개의 보석을 박은 보석 방에 어머니의 영혼을 모신 사원이나 그 보석은 흔적이 없고 돌에는 보석 박은 구멍만 남아 무상함을 남겨준다. 타프롬 사원은 인간이 자연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현 상태로 보존하고 있다. 600년 된 나무 800년 된 나무 1400년 된 나무뿌리가 인간이 피 땀 흘려 만든 건축물을 감싸고 무너뜨리고~~ 그런데 지금은 나무와 건축물이 공생을 하고 있습니다. 나무가 죽으면 건축물도 무너진답니다.

바이온 사원(크메르의 미소)

바이온 사원은 자야 비르만 7세의 본인을 위한 사원이다
20만개의 돌들을 쌓아 올려 총 54개의 탑을 세웠으며 탑 4면에 거대 불상을 새겨 총 216기의 불상이 있었으나 지금은 일부 무너진 채로 복구를 기다리고 있다. 전체의 형상은 두 손을 합장한 형상이며 바이온 불상은 유명한 모나리자 미소와 맞먹는 크메르의 미소이며보는사람의 마음에 따라 변하는 신비의 미소를 언제나 머금고 있습니다.
바이온 사원을 돌아 나오며 아름다운 앙코르 유적관광을 마무리 하면서 자꾸만 아쉬워 뒤돌아보며 툭툭이에 올랐다. 가난한 나라 캄보디아! 조상이 물려준 불가사의한 앙코르 유적 하루 1만 명의 관광수입 하지만 그 돈은 캄보디아가 아닌 베트남으로 건너간다니 앙코르유적이 캄보디아가 아닌 베트남 소유라니 집권 훈센 총리가 이 유적을 베트남에 넘겨주고 권력을 보장받고 있단다. 빈곤의 나라 캄보디아 관광수입이 유일할진데 그것조차 빼앗기고 있다니 영원히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아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6월5일 톤레삽 호수

호수 들어가는 입구에 마을에 들려 현지 라면을 가이드가 준비한 것 2개씩 2봉지가지고 내려 그들에게 주는데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너도 나도 손을 벌이는데 참으로 안 돼 보였다. 집은 우리 원두막같이 지었고 주변에는 소똥 말똥과 사람들의 냄새로 꿍꿍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사전에 정보가 있었으면 줄 수 있는 것을 준비하여 그들에게 줬으면 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버스에 올라 수상 마을로 향했다. 내릴 때 생수 한 병씩 가지고 내리라하여 그 생수는 먹는 것이 아니고 수상마을 사람에게 주라한다.
크메르 왕국이 번창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톤레삽 호수에 풍부한 어족자원 으로 호수주변에서 풍족한 삶을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길이 160km 폭 40km바다 같은 이 호수를 보기 위해 대절 배에 올랐다 작은 배를 타고 강을 따라 내려가는데 물은 황토 흙탕물이고 건기라 수심이 얕아 배 스크루가 걸리 기도한다. 강가 주변에 투망을 하는 사람들이 간간이 있고 얼마쯤 가는데 우리 선교사가 세워다는 교회도 보이고 학교 운동장이라 고하는 강위에 세워진 수상건물이 보인다. 배라 고해야 원동기 모터를 달고 긴 수쿠르를 눕여 만든 배로 20여명 타면 만원이고 초등학교 3년 정도의 1명의 꼬마가 배의 앞. 뒤를 봐주며 선장 보조를 해주고 있었다. 가이드 말로는 이 꼬마가 배 운전하는 것을 배워 자기도 선장하는 것이 꿈이란다. 캄보디아는 물의 나라이다 톤레삽 호수에서 고기를 잡고 목욕하고 그 물로 밥해먹고 빨래하고 설거지 하고 또 그 물에 볼일도 본다. 이들은 캄보디아에서도 최 빈민들이다 하지만 조그마한 나룻배에서 아이도 어른도 그물위에 생활하며 온 가족이 평화롭게 살고 있다. 수상가옥들을 지나 드디어 바다처럼 넓다는 톤래삽 호수를 볼 수 있는 곳까지 왔습니다. 육지 안에 이렇게 넓은 호수가 있을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직접 눈으로 보고도 말이죠.…….
물위에 관공서와 학교, 슈퍼도 있고 고장 나면 수리도 해주는 철공소, 음식점, 교회도 있다 행복지수는 세계 3위의 수상 족들이다
주변 구경을 하며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이번에 일가족 쪽배가 옆으로 붙는다.10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녀 목에는 커다란 구렁이를 걸고 엄마는 노를 젓고 동생쯤으로 보이는 소년은 무엇인가 달란다. 들고 간 물 생수를 던져주니 목숨 걸고 생수를 받는다. 이런 쪽배로 구걸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베트남 하롱베이

캄보디아에서 일정을 마무리하고 5일 저녁 6시 40분 비행기가 결항하여 10시40분
출발하게 되어 출국 수속하던 차 공항 직원이 비자와 함께 여권 확인하는 도중 돈 천원을 요구하여 웃지 못 할 촌극이 벌어졌다. 나는 뒤에서 나오는데 김용원 권사가 빨 리오란다. 한 가족이 천원 이리해서 같이 나가잔다. 내가오니 천원을 더 요구해 무심코 천원을 주었는데 이것이 뇌물 아닌 뇌물 못사는 나라 캄보디아에서만 있는 웃지 못 할 일이다.돈준사람 안준 사람으로 우리는 한바탕 웃었다.
하롱베이는 북부 하노이에서 약 200km 동쪽에 있는 약 3000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유네스코의 세계 자연유산으로 지정되어있고, 현재 우리나라 제주도와 같이 세계 7대 관광지에 올라있는 섬이다. 섬들이 너무 많아 조류와 파도가없고 때문에 염도가 높아 고기가살수없고 원숭이와 독수리때문에 갈매기가 살수없는 섬 하롱베이
오늘은 하루 종일하롱베이 관광이다 우리 일행16여명인데 우리들 관광을 위해 가이드를 비롯하여 현지 가이드 .선장 겸 주인 ,아내는 음식조리사 등 이다 예약된 관광선을 타고 안개 속에 감추어진 하롱베이 섬들을 찾으며 여유롭게 달린다.
얼마 후 하나 둘 섬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시야에 들어오는 절경들 섬 한복의 그림 같은 섬들에 환호하며 사진 찍기에 바쁘다. 깨끗한 자연환경에 환상적인 석회동굴과 에메랄드 바다에 비친 기암괴석 바위절벽들의 조화정말 베트남의 명소임에 틀림이 없다 그림 같은 수많은 섬들이 지나가고 다가오고 ~~~
아름다운 섬들 사이로 유람선은 달린다.

(두번째 사진 ) 사진이 두장이상 들어가지 않아 유감

그 섬이 그 섬이네! 모두다 똑같이 아름다운 섬들이~~
배는 가만히 있는데 섬들이 계속 다가오는 착각 속에 주변경치에 취한다.
쾌속정 뽀트를 타고 달리는 상쾌함 더 속력 내라 외치면 간만에 가슴이 탁 트인다. 작은 나룻배를 타고 동굴 같은 굴을 지나 기도하고 겨우 나룻배만 통과 할 수 있는 입구를 지나보니 안에 들어가니 사방 기암절벽으로 둘러싸인 호수 같다.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의 경이로움에 다시 한 번 감탄사를 연발하며 절벽에 원숭이들에게 먹이를 던져주고 나와 유람선에 도착하니 선상에서 준비한 싱싱한 회와 점심 식사가 기다리고 있다.
배안 노래방 기기에서 우리의 노래가 흘러나오니 여기가 한국인지 베트남인지 분간이 안 간다. 하루 종일 하롱베이경치에 취하다가 호텔로 돌아 왔다.

하노이호치민광장

베트남은 프랑스와 22년의 전쟁에서 승리했고 미국과 12년을 싸워 이긴 국민자존심이 아주센나라이며 대한민국의 사돈나라 이다. 그 중앙에 국민의 영웅 호치민(호지명)이 있다. 베트남 국민들은 호치민 아저씨로 친근하게 불리며 사회주의이념을 넘어 민족주의자로서 호치민이다

여기는 호치민의 묘!

베트남에 얘기 한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
유일하게 독립된 분단된 나라를 통일 시킨 사람인 호치민이다!
"그는 우주만큼 넓은 심장을 가진 사람이었으며 아이들에 대한 가식 없는 사랑을 가진 사람이었다. 모든 분야에서 소박함의 모범이라고 전 세계의 언론이 극찬했던! 사람
권력을 통해 어떠한 부귀영화도 누리지 않았고 조금의 안락을 추구하지도 않았던 호치민! 사회주의 국가의 슬로건은 여기도 비슷한 게 붉은 글씨로 광장좌측은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영원하라”우측은“민족의 영웅 호치민 만세”
호지명에 대한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나는 많은 것을 생각 하였고 그는 공산주의자였지만 참 민주주의의 이념을 실현한 공산주의자로서 그에 대한 이력을 간단히 소개하기로 합니다.
그는 1890년도에 베트남이 프랑스의 식민지배하에 태어났고 애국심이 지극한 아버지슬하에 2남1녀중 막내로 태어나서 어린 시절 영국으로 유학을 가서 식당및 잡일로 알바를 하며 어렵게 공부를 하였고 이후 미국,터키,중국,러시아에서 많은 공부를 하였고 레닌을 숭상하는 공산주의자로 정치수업을 받아 1946년도에 북베트남에서 1969년도 사망에 이르기까지 총리및 대통령을 한 인물이다.
호치민은 살아생전 일식 삼찬을 고집했다 한다. 인민과 함께한다고 검소하게 살랐으며 지도자가 되어서는 친인척에게 호치민이 있는 곳에서 100KM 이내에는 살지 못하게 했단다. 권력의 힘에 기대는 부정을 막고자 했음이고, 살아서 이름을 29번이나 바꿔가며 생활했단다. 정적과 사회주의 운동으로 암살위험으로부터 자기 신분을 노출시키지 않고자 했는데 그 뒤 하나뿐인 누나가 호치민이 자기 동생인줄 알고 대통령궁을 찾아 왔는데 누나를 만나 주지 않고 그냥 돌려 보내다한다. 누나를 만나면 인민 보다 누나를 더 사랑할 것 같아 그래단다. 누나가 돌아간 후 호치민은 눈물을 훔치면서 비서에게 2층 창문을 닿지 않게 했단다. 현지가이드의 말.
호치민은 살아생전 유언을 3가지했단다.
호지명은 유언으로 첫째 나를 우상화 하거나 무덤을 만들지 말고 화장을 하여 잿가루를 월남의 동서남북으로 뿌려라. 둘째로 전쟁이 끝나더라도 미국과 자본주의에 보복하지 마라. 셋째 전사한 가족들은 국가가 책임을 져라. 그러나 국가에서 정치지도자들은 첫 번째 유언은 받아 들이지 않고 호지명의 영전을 유리관속에 모셔 관광객 모든 분들에게 월,금요일을 제외하고 관람을 하고 그분의 정신을 살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호지명은 사후에 유품으로 지팡이 하나, 옷 한벌, 신발 하나,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뿐이었다는 것입니다. 난아직 부끄럽지만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읽지 못했다. 가이드의 말을 듣고
꼭한번 읽어보겠다고 생각해본다.
인구 800만의 하노이는 베트남의 수도이며 오토바이들이 도시의 남녀노소 없이 홍수가 난 강물처럼 오토바이가 쏟아져 나온다 왠지 불안하지만 이곳에서만 통하는 룰이 있어 아무 문제없이 잘도 달린다. 바쁘게 움직이는 하노이의 오토바이 행렬은 베트남 발전의 원동력이 될 것이며 베트남 앞날에 희망을 보았다. 시내 한 바퀴를 개조한 골프 카로 돌며 베트남의 잠재력을 보았다. 다들 젊고 인구가 9,000만이 넘고, 자원이 품부하여 2050년에는 우리나라를 능가하는 발전을 한다고 한다. 참고로 현재 1인당 GNP는 3,000달라 저녁을 먹고 여행으로 피로한 몸을 현지 마사지로 풀기위해 업소를 찾았다. 어찌나 종업원들이 명랑하고 쾌할 한지 내 파트너는 장난꾸러기로 계속 웃고 장난을 친다. 이들 속에 행복한 모습을 보며 아쉬운 캄보디아 베트남 기행을 마무리 한다



[이 게시물은 명곡교회님에 의해 2014-05-18 21:27:13 공지사항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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