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행복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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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명곡교회 작성일2026.10.11 09:02 조회5회 댓글0건본문
시편1:1-6
1. 행복은 악인의 길을 멀리하는 데 있습니다(1절)
시편 1편은 "복 있는 사람"으로 시작하는데, 히브리어에서 '복되다'는 곧 '행복하다'는 뜻입니다. 시인은 행복한 사람을 먼저 그가 가지 않는 길로 설명합니다. 그는 삶에 하나님을 위한 자리가 없는 경건치 않은 자, 하나님 없이 사는 것이 전혀 불편하지 않은 죄인, 죄와 하나님을 비웃는 오만한 자를 따르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먼저 그들의 말을 듣고, 그다음 함께 어울리다가, 결국 그 무리 안에 앉게 됩니다. 영적이지 못한 사람에게 영적인 조언을 구하는 것은 자동차 정비사에게 뇌수술을 묻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우리는 죄인의 친구이신 예수님처럼 그들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말에 영향을 받거나 그들처럼 살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시편 1편은 "복 있는 사람"으로 시작하는데, 히브리어에서 '복되다'는 곧 '행복하다'는 뜻입니다. 시인은 행복한 사람을 먼저 그가 가지 않는 길로 설명합니다. 그는 삶에 하나님을 위한 자리가 없는 경건치 않은 자, 하나님 없이 사는 것이 전혀 불편하지 않은 죄인, 죄와 하나님을 비웃는 오만한 자를 따르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먼저 그들의 말을 듣고, 그다음 함께 어울리다가, 결국 그 무리 안에 앉게 됩니다. 영적이지 못한 사람에게 영적인 조언을 구하는 것은 자동차 정비사에게 뇌수술을 묻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우리는 죄인의 친구이신 예수님처럼 그들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말에 영향을 받거나 그들처럼 살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2. 행복은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는 데 있습니다(2절)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입니다. 그는 말씀을 연구하기를 좋아하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여 그대로 행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 하실 때 그것은 "너 자신에게 상처를 주지 말라"는 뜻이며, "하라" 하실 때는 "행복을 누리라"는 초대입니다. 배드민턴도 기본기를 배울수록 더 즐거워지듯,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알고 그대로 살수록 우리는 더 행복해집니다. 그러나 성경을 아침 신문처럼 읽고 덮어버린다면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말씀은 해야 할 목록에서 지워 버릴 숙제가 아닙니다. 읽은 말씀을 깊이 생각하고 삶에 적용할 때, 말씀은 무엇이 선하고 악한지 가르치며 우리 삶의 자세를 바로잡아 줍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밖에서는 결코 참된 행복을 찾을 수 없습니다. 거룩한 삶이 곧 행복한 삶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입니다. 그는 말씀을 연구하기를 좋아하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여 그대로 행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 하실 때 그것은 "너 자신에게 상처를 주지 말라"는 뜻이며, "하라" 하실 때는 "행복을 누리라"는 초대입니다. 배드민턴도 기본기를 배울수록 더 즐거워지듯,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알고 그대로 살수록 우리는 더 행복해집니다. 그러나 성경을 아침 신문처럼 읽고 덮어버린다면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말씀은 해야 할 목록에서 지워 버릴 숙제가 아닙니다. 읽은 말씀을 깊이 생각하고 삶에 적용할 때, 말씀은 무엇이 선하고 악한지 가르치며 우리 삶의 자세를 바로잡아 줍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밖에서는 결코 참된 행복을 찾을 수 없습니다. 거룩한 삶이 곧 행복한 삶입니다.
3. 행복은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데 있습니다(3–4절)
시인은 복 있는 사람을 "시냇가에 심은 나무"에 비유합니다. 나무의 목적은 뿌리를 내리는 것과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말씀에 뿌리를 내린 사람은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습니다. 세상을 정말로 움직인 사람들은 세상이 흔들 수 없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다른 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칩니다. 그러나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습니다. 타작마당에서 무거운 알곡은 남지만 가벼운 겨는 바람에 날려 불태워집니다. 겨는 아무 쓸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이 주신 목적을 발견하고 그 목적을 이루며, 내 생애보다 오래 남을 것을 위해 사는 데 있습니다. 자기중심의 삶은 비극으로 끝나지만, 하나님 중심의 삶은 행복하게 살고 행복하게 죽으며 영원한 기쁨으로 이어집니다.
시인은 복 있는 사람을 "시냇가에 심은 나무"에 비유합니다. 나무의 목적은 뿌리를 내리는 것과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말씀에 뿌리를 내린 사람은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습니다. 세상을 정말로 움직인 사람들은 세상이 흔들 수 없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다른 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칩니다. 그러나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습니다. 타작마당에서 무거운 알곡은 남지만 가벼운 겨는 바람에 날려 불태워집니다. 겨는 아무 쓸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이 주신 목적을 발견하고 그 목적을 이루며, 내 생애보다 오래 남을 것을 위해 사는 데 있습니다. 자기중심의 삶은 비극으로 끝나지만, 하나님 중심의 삶은 행복하게 살고 행복하게 죽으며 영원한 기쁨으로 이어집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시편 1편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을 어떤 사람이라고 말씀합니까?
2. 나는 지금 누구의 조언에 귀 기울이고 있으며,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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