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우리의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회개와 용서들. 자신이 옳다고 생각했던 행동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잘못되고 있음을 느끼게될 때 비로소 그 일에 관계된 타인의
입장도 눈에 들어오게 되고 그 때에야 비로소 회개나 용서가 생겨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잘못이 때로는 뼈아픈 경험과 자기성찰의 과정을 통해서 오히려
성숙해지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회개와 용서는 어떤 것이 먼저 선행 되어야 할까요? 먼저 진정으로 회개할 때
용서를 받는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충분히 반성하고 뉘우치는 모습을 보고서야
'그래 이제야 네 잘못을 알겠지'하며 용서 해주는 것은 좋은 결과로 끝을 맺는 경우지만
그러나 잘못을 충분히 인식 시켜준 대가로 회개와 용서가 이루어진다면 사람들은
얼마가지 않아서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고 말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성적인 규범과
도덕이 앞섰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한가지 쯤 평생에 있지 못할 기억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것은
다 잊혀 졌는데 왜 그 사건만은 오래 동안 가슴에 남아서 자신의 생활에(희망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요? 거기에는 분명 말로 다 표현되지 않는 진한 감동이
스며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용서와 회개에는 진정과 감동이 있어야 합니다. 그 행위 속에서
마음을 울리는 향기가 있을 때 오랫동안 기억되는 진실이 생겨나는 것이겠지요.
하나님의 용서와 회개의 사건에는 언제나 심금을 울리는 진한 감동이 흐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감동 속에서 주님은 언제나 용서가 먼저였습니다.
우리 잘못과 연약함을 말하기 전에 이미 용서의 마음으로 가득하신 것입니다.
성경의 기록된 사건들 속에서 그 사실들을 익히 확인할 수 있는 곳이 많지만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서 역시 용서 하시는 아버지의 감동을 강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나
여기에서 제가 묵상하며 역설적으로 전하고 싶은 것은 아들의 마음에 평생 잊지 못할
사랑의 장으로 각인되었을 아버지를 만나는 순간의 진한 감동을 나눠보고 싶은 것입니다.
그리고 비록 성경에서 자세히 표현 되지는 않았지만 아버지의 환영과 용서를 보고
있었을 저의 자화상 같은 큰아들에게도 또한 자기성찰과 회개의 마음으로 환영의
깃발을 들어주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좀 더 구체적인 감동의 전달을 위해 읽고 있던 책 중의 이야기 한 토막을 소개합니다.
*
소녀는 미시간주 터래버스 시티 위쪽 버찌 농장에서 성장했다
부모는 약간 구식이라 딸이 듣는 음악, 치마 길이 따위에 과민반응을
보이곤 했다. 어쩌다 외출 금지령이라도 떨어지면 소녀는 가슴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 날도 말다툼 후 아버지가 방문을 두드리자 딸은 소리친다.
"아빠가 미워" 그날 밤 소녀는 그동안 생각으로만 수없이 연습했던 일을
행동에 옮긴다. 가출을 한 것이다.
디트로이트는 전에 교회 중고등부에서 야구경기를 보기위해 버스를 타고
한 번 가본일 밖에 없다. 그곳은 신문마다 갱단 마약 폭력기사가 무서울 정도로
자세히 보도되는 터라 소녀는 부모가 설마 그런 곳으로 자기를 찾아 나서지는
않으리라 단정한다. 플로리다라면 모를까 여기는 아니겠지.
이틀 째 되는 날 소녀는 지금까지 본 것 중 제일 큰 차를 타고 다니는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남자는 차도 태워주고 점심도 사주고 머물 곳도 마련해 준다.
소녀는 남자가 준 알약을 먹고 생전 몰랐던 기분에 빠져든다. 소녀는 '역시 내가 옳았어.
엄마 아빠는 재미 있는 것은 하나도 못하게 했던 거야'라고 단정한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한해가 별탈없이 지나간다. 큰 차를 모는 남자-소녀에게
사장님으로 통하는-는 소녀에게 남자들이 좋아하는 일을 몇 가지 가르친다.
상대가 아직 미성년자 인만큼 남자들이 내는 돈에도 웃돈이 붙는다.
소녀는 마음껏 룸서비스도 주문해 가면서 빌딩 옥상의 고급주택에 살고 있다.
가끔 식구들이 생각날 때도 있지만 지금은 자기가 거기서 자랐다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그들의 삶이 답답하고 촌스럽게 보인다.
소녀는 어느 날 우유팩 뒷면에 "사람을 찾습니다."란 문구와 함께 자기 사진이
실린 것을 보고 잠시 놀란다. 하지만 머리는 이제 금발이고 짙은 화장에 여기저기
구멍도 뚫고 보석까지 단 여자를 그 아이로 착각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1년이 지나면서 소녀의 얼굴에 병색이 돌기 시작했다. 돌연 낯빛이 바뀌는
사장을 보고 소녀는 경악한다. "요즘 같은 세상에 빈둥거려서는 안 돼."
사장이 불만을 표하고 소녀는 어느 새 1원 한 푼 없이 길거리로 나앉게 된다.
여전히 하룻밤에 두세건 씩 일을 건지기는 하지만 이제는 큰돈도 못 받는데다
그나마 받은 돈도 마약을 사는데 쓰면 끝난다. 겨울이 오자 소녀는 대형 백화점 밖
쇠창살에 기대어 잔다. 그러나 잔다는 것은 틀린 말이다. 한밤중 디트로이트 시내는
십대 소녀가 경계를 풀 수 있는 곳이 못된다. 어둠이 깔려온다. 기침이 심해진다.
그날 밤도 사람들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깨어 있는데 한 순간 모든 것이 달라 보이기
시작한다. 무대의 주인공 같은 기분은 더 이상 간데없고 춥고 무서운 도시의 길 잃은
아이의 심정만 남는다.
소녀는 훌쩍 거리기 시작한다. 주머니는 비어 있는데 배가 고프다.
대책이 필요하다. 소녀는 바닥에 웅크리고 코트위에 신문지까지 덮어쓴 채 떨고 있다.
불현듯 끊었던 기억이 되살아나며 하나의 영상이 가슴가득 떠오른다.
천지에 벛꽃이 만발한 5월에 트레버스시티. 소녀의 황금빛 사냥개가 테니스공을 찾아
벛꽃이 흐트러진 나무 숲속을 달리는 장면.
"하나님 제가 어쩌다 집을 나왔을까요?" 소녀가 혼자말로 중얼댄다.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다.
"우리집 개도 나보다 잘 먹는데." 소녀는 흐느낀다.
그리고 그 순간에 깨닫는다. 견딜 수 없도록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것을.
연거푸 세 차례 전화를 걸지만 계속 응답기만 울린다. 처음 두 번은 그냥 끊지만
세 번째는 메세지를 남긴다."아빠 엄마, 저예요. 집에 갈지도 모르겠어요.
집 방향 버스를 타요. 그 쪽에 가면 자정쯤 될 거예요.
아빠가 없으면 그냥 버스에 앉아 캐나다까지 가겠죠."
버스가 디트로이트와 고향마을을 통과 하는 데는 일곱 시간이 걸린다.
그 사이 소녀는 자기계획의 헛점을 깨닫는다. 만약 아빠 엄마가 출타 중이라
메시질 못 듣는다면? 하루 이틀 더 기다린 후 직접 통화를 했어야 하지 않을까?
설사 집에 계신다 해도 딸 하나 오래 죽은 셈치고 단념하고 계실지도 몰라.
충격을 극복할 시간을 드릴걸.
이런 염려 중에도 아버지한테 할 말을 준비하느라 소녀의 생각은 어지럽기만 하다.
"아빠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아빠 잘못이 아니에요.
다 제 잘못이에요. 아빠, 용서해 주세요."
수없이 되뇌는 말 연습인데도 벌써 목이 잠긴다.
남에게 잘못을 빌어 본 적이 언제던가.
버스는 베이시티부터 불을 켜고 달린다. 숱한 바퀴에 닳아진 도로 위로
작은 눈송이가 흩날리고 아스팔트에서 뿌옇게 김이난다.
고향의 밤은 칠흑같이 어둡다는 것을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다.
사슴 한 마리가 쏜살같이 길을 가로지르는 바람에 버스가 잠시 출렁인다.
길옆에는 고향까지 알리는 표지판이 나왔다 사라지고 또 나왔다 사라졌다.
'오, 하나님.'
버스는 에어 브레이크가 쉿 소리를 내며 드디어 터미널 안으로 들어서자 운전사가
쉰 목소리로 안내방송을 한다. "정차시간은 15분입니다. 소녀의 운명을 판가름 낼
운명의 15분. 소녀는 손거울로 얼굴을 살피고 머리를 매 만진 뒤 위 아래이로
맆스틱을 지워낸다. 손가락 끝의 담배얼룩을 보며 부모님이 자기를 알아볼까
잠시 생각해본다. 물론 나와 계신 경우의 예기다.
앞일을 전혀 모른 채 소녀는 터미널로 들어선다. 오만가지 상상을 다해봤지만
정작 눈앞에 펼쳐진 것은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장면이다.
콘크리트 벽에 플라스틱 의자뿐인 트레버스 시티 버스 터미널 안에
형제자매부터 시작해 삼촌들,할머니,증조할머니,이모할머니까지
무려 사십 명이나 되는 일가친척이 다 나와 서 있는 것이다.
저 마다 우스꽝스러운 파티 모자를 쓰고는 요란한 악기를 불면서 터미널 벽은 온통
컴퓨터로 뽑아낸 "환영!" 현수막으로 뒤덮혀 있다.
환영 인파 속에서 아빠가 다가오자 소녀는 녹아내리는 수은처럼
눈물이 아른 거리는 눈으로 아빠를 보며 외워둔 말을 시작한다.
"아빠, 죄송해요.."
아빠가 말을 막는다.
"쉿!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용서를 빌고 있을 시간이 없어.
파티에 늦을라. 집에서 잔치가 널 기다리고 있거든."
.........
우리의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회개와 용서들. 자신이 옳다고 생각했던 행동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잘못되고 있음을 느끼게될 때 비로소 그 일에 관계된 타인의
입장도 눈에 들어오게 되고 그 때에야 비로소 회개나 용서가 생겨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잘못이 때로는 뼈아픈 경험과 자기성찰의 과정을 통해서 오히려
성숙해지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회개와 용서는 어떤 것이 먼저 선행 되어야 할까요? 먼저 진정으로 회개할 때
용서를 받는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충분히 반성하고 뉘우치는 모습을 보고서야
'그래 이제야 네 잘못을 알겠지'하며 용서 해주는 것은 좋은 결과로 끝을 맺는 경우지만
그러나 잘못을 충분히 인식 시켜준 대가로 회개와 용서가 이루어진다면 사람들은
얼마가지 않아서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고 말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성적인 규범과
도덕이 앞섰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한가지 쯤 평생에 있지 못할 기억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것은
다 잊혀 졌는데 왜 그 사건만은 오래 동안 가슴에 남아서 자신의 생활에(희망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요? 거기에는 분명 말로 다 표현되지 않는 진한 감동이
스며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용서와 회개에는 진정과 감동이 있어야 합니다. 그 행위 속에서
마음을 울리는 향기가 있을 때 오랫동안 기억되는 진실이 생겨나는 것이겠지요.
하나님의 용서와 회개의 사건에는 언제나 심금을 울리는 진한 감동이 흐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감동 속에서 주님은 언제나 용서가 먼저였습니다.
우리 잘못과 연약함을 말하기 전에 이미 용서의 마음으로 가득하신 것입니다.
성경의 기록된 사건들 속에서 그 사실들을 익히 확인할 수 있는 곳이 많지만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서 역시 용서 하시는 아버지의 감동을 강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나
여기에서 제가 묵상하며 역설적으로 전하고 싶은 것은 아들의 마음에 평생 잊지 못할
사랑의 장으로 각인되었을 아버지를 만나는 순간의 진한 감동을 나눠보고 싶은 것입니다.
그리고 비록 성경에서 자세히 표현 되지는 않았지만 아버지의 환영과 용서를 보고
있었을 저의 자화상 같은 큰아들에게도 또한 자기성찰과 회개의 마음으로 환영의
깃발을 들어주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좀 더 구체적인 감동의 전달을 위해 읽고 있던 책 중의 이야기 한 토막을 소개합니다.
*
소녀는 미시간주 터래버스 시티 위쪽 버찌 농장에서 성장했다
부모는 약간 구식이라 딸이 듣는 음악, 치마 길이 따위에 과민반응을
보이곤 했다. 어쩌다 외출 금지령이라도 떨어지면 소녀는 가슴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 날도 말다툼 후 아버지가 방문을 두드리자 딸은 소리친다.
"아빠가 미워" 그날 밤 소녀는 그동안 생각으로만 수없이 연습했던 일을
행동에 옮긴다. 가출을 한 것이다.
디트로이트는 전에 교회 중고등부에서 야구경기를 보기위해 버스를 타고
한 번 가본일 밖에 없다. 그곳은 신문마다 갱단 마약 폭력기사가 무서울 정도로
자세히 보도되는 터라 소녀는 부모가 설마 그런 곳으로 자기를 찾아 나서지는
않으리라 단정한다. 플로리다라면 모를까 여기는 아니겠지.
이틀 째 되는 날 소녀는 지금까지 본 것 중 제일 큰 차를 타고 다니는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남자는 차도 태워주고 점심도 사주고 머물 곳도 마련해 준다.
소녀는 남자가 준 알약을 먹고 생전 몰랐던 기분에 빠져든다. 소녀는 '역시 내가 옳았어.
엄마 아빠는 재미 있는 것은 하나도 못하게 했던 거야'라고 단정한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한해가 별탈없이 지나간다. 큰 차를 모는 남자-소녀에게
사장님으로 통하는-는 소녀에게 남자들이 좋아하는 일을 몇 가지 가르친다.
상대가 아직 미성년자 인만큼 남자들이 내는 돈에도 웃돈이 붙는다.
소녀는 마음껏 룸서비스도 주문해 가면서 빌딩 옥상의 고급주택에 살고 있다.
가끔 식구들이 생각날 때도 있지만 지금은 자기가 거기서 자랐다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그들의 삶이 답답하고 촌스럽게 보인다.
소녀는 어느 날 우유팩 뒷면에 "사람을 찾습니다."란 문구와 함께 자기 사진이
실린 것을 보고 잠시 놀란다. 하지만 머리는 이제 금발이고 짙은 화장에 여기저기
구멍도 뚫고 보석까지 단 여자를 그 아이로 착각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1년이 지나면서 소녀의 얼굴에 병색이 돌기 시작했다. 돌연 낯빛이 바뀌는
사장을 보고 소녀는 경악한다. "요즘 같은 세상에 빈둥거려서는 안 돼."
사장이 불만을 표하고 소녀는 어느 새 1원 한 푼 없이 길거리로 나앉게 된다.
여전히 하룻밤에 두세건 씩 일을 건지기는 하지만 이제는 큰돈도 못 받는데다
그나마 받은 돈도 마약을 사는데 쓰면 끝난다. 겨울이 오자 소녀는 대형 백화점 밖
쇠창살에 기대어 잔다. 그러나 잔다는 것은 틀린 말이다. 한밤중 디트로이트 시내는
십대 소녀가 경계를 풀 수 있는 곳이 못된다. 어둠이 깔려온다. 기침이 심해진다.
그날 밤도 사람들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깨어 있는데 한 순간 모든 것이 달라 보이기
시작한다. 무대의 주인공 같은 기분은 더 이상 간데없고 춥고 무서운 도시의 길 잃은
아이의 심정만 남는다.
소녀는 훌쩍 거리기 시작한다. 주머니는 비어 있는데 배가 고프다.
대책이 필요하다. 소녀는 바닥에 웅크리고 코트위에 신문지까지 덮어쓴 채 떨고 있다.
불현듯 끊었던 기억이 되살아나며 하나의 영상이 가슴가득 떠오른다.
천지에 벛꽃이 만발한 5월에 트레버스시티. 소녀의 황금빛 사냥개가 테니스공을 찾아
벛꽃이 흐트러진 나무 숲속을 달리는 장면.
"하나님 제가 어쩌다 집을 나왔을까요?" 소녀가 혼자말로 중얼댄다.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다.
"우리집 개도 나보다 잘 먹는데." 소녀는 흐느낀다.
그리고 그 순간에 깨닫는다. 견딜 수 없도록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것을.
연거푸 세 차례 전화를 걸지만 계속 응답기만 울린다. 처음 두 번은 그냥 끊지만
세 번째는 메세지를 남긴다."아빠 엄마, 저예요. 집에 갈지도 모르겠어요.
집 방향 버스를 타요. 그 쪽에 가면 자정쯤 될 거예요.
아빠가 없으면 그냥 버스에 앉아 캐나다까지 가겠죠."
버스가 디트로이트와 고향마을을 통과 하는 데는 일곱 시간이 걸린다.
그 사이 소녀는 자기계획의 헛점을 깨닫는다. 만약 아빠 엄마가 출타 중이라
메시질 못 듣는다면? 하루 이틀 더 기다린 후 직접 통화를 했어야 하지 않을까?
설사 집에 계신다 해도 딸 하나 오래 죽은 셈치고 단념하고 계실지도 몰라.
충격을 극복할 시간을 드릴걸.
이런 염려 중에도 아버지한테 할 말을 준비하느라 소녀의 생각은 어지럽기만 하다.
"아빠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아빠 잘못이 아니에요.
다 제 잘못이에요. 아빠, 용서해 주세요."
수없이 되뇌는 말 연습인데도 벌써 목이 잠긴다.
남에게 잘못을 빌어 본 적이 언제던가.
버스는 베이시티부터 불을 켜고 달린다. 숱한 바퀴에 닳아진 도로 위로
작은 눈송이가 흩날리고 아스팔트에서 뿌옇게 김이난다.
고향의 밤은 칠흑같이 어둡다는 것을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다.
사슴 한 마리가 쏜살같이 길을 가로지르는 바람에 버스가 잠시 출렁인다.
길옆에는 고향까지 알리는 표지판이 나왔다 사라지고 또 나왔다 사라졌다.
'오, 하나님.'
버스는 에어 브레이크가 쉿 소리를 내며 드디어 터미널 안으로 들어서자 운전사가
쉰 목소리로 안내방송을 한다. "정차시간은 15분입니다. 소녀의 운명을 판가름 낼
운명의 15분. 소녀는 손거울로 얼굴을 살피고 머리를 매 만진 뒤 위 아래이로
맆스틱을 지워낸다. 손가락 끝의 담배얼룩을 보며 부모님이 자기를 알아볼까
잠시 생각해본다. 물론 나와 계신 경우의 예기다.
앞일을 전혀 모른 채 소녀는 터미널로 들어선다. 오만가지 상상을 다해봤지만
정작 눈앞에 펼쳐진 것은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장면이다.
콘크리트 벽에 플라스틱 의자뿐인 트레버스 시티 버스 터미널 안에
형제자매부터 시작해 삼촌들,할머니,증조할머니,이모할머니까지
무려 사십 명이나 되는 일가친척이 다 나와 서 있는 것이다.
저 마다 우스꽝스러운 파티 모자를 쓰고는 요란한 악기를 불면서 터미널 벽은 온통
컴퓨터로 뽑아낸 "환영!" 현수막으로 뒤덮혀 있다.
환영 인파 속에서 아빠가 다가오자 소녀는 녹아내리는 수은처럼
눈물이 아른 거리는 눈으로 아빠를 보며 외워둔 말을 시작한다.
"아빠, 죄송해요.."
아빠가 말을 막는다.
"쉿!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용서를 빌고 있을 시간이 없어.
파티에 늦을라. 집에서 잔치가 널 기다리고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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