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인대학의 하루

  • LV 1 이금용
  • 조회 5080
  • 일반
  • 2011.01.07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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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목의 가장 아름다움을 묻는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물이 오른 가지마다 무성한 잎들이
푸르럼을 자랑하며 바람에 시원스럽게 흔들리고 있을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맑은 하늘 아래 가지마다 탐스럽게 달려있는 어느 시골 집 앞마당 오래된 감나무의
그 풍성한 자태도 결코 빠뜨릴 수 없는 아름다움의 하나 이겠지요.
하늘높이 솟아오른 미루나무의 당당함을 아무도 교만스럽다고 생각지는 않을 것입니다.

생명의 바람을 타고 봄부터 시작된 수목의 세계는 그렇게 여름이 지나고 계절이 바뀌어
갔는데도 그 모습을 바꾸어가며 열정적인 자태를 결코 잃지를 않았습니다.
처음 시작이 두려웠지만 어느 봄날 그들은 마침내 꽃을 피웠었고 여름이 왔을 때
그들의 열정은 푸름과 함께 더욱 짙어만 갔으며 가을을 걱정했지만 대견스럽게 또
탐스런 열매를 맺을 수가 있었습니다.

많은 변화 앞에서 그들은 실패를 경험하지도 않았고 고난과 좌절을 맛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겨울을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겨울은 오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시행착오 없었던 젊은 날들의 성공이 그들을 교만의 산으로 끌고 갔기 때문입니다.

푸름을 퇴색시키는 서리와 북풍 찬바람이 불어오지만 않는다면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그들의 영광은 이 땅에서 영원할지도 모릅니다.
... 그러나 때가되면 겨울은 오는 것입니다.

매미의 노래 소리가 그치고 오색단풍의 화려함에 경탄의 박수를 보내던 사람들이
떠나가고 옷깃을 여미게 하는 찬바람이 인적을 끊어 놓을 때쯤이면, 퇴색한 나뭇잎은
하나 둘 떨어지고 그리고 그들의 화려했던 자랑들은 한 갓 꿈으로 사라져갈 것입니다.

                                                *

목요일 오전 10시 명곡노인대학이 열리는 날입니다. 교회당 좁은 마당을 쌩! 하니
바람이 먼저 한바퀴 돌고 지나갑니다. 하늘을 쳐다봅니다.
평소답지 않게 이날만은 늘상 일기예보에 신경이 쓰이는데 다행이 오늘도 구름조금
햇볕을 가려주는 적당한 날씨에 노인들을 맞이하기에는 안성마춤입니다.
 
개학을 한지 반년이 넘어가면서 이제 인근 지역 웬만한 곳은 소문이 파다한
때문인지 전 번에 입학한 사람들이 오늘은 친구를 데리고 오기도 합니다.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한 사람 한 사람 낯익은 얼굴들이 예배당으로 모여듭니다.
 
멀리서도 단번에 알 수 있는 모습들, 백발의 머리에 꺾어진 허리를 지팡이에 의지하고
천천히 올라옵니다. 그들은 인사소리를 들어도 빨리 머리를 들 수가 없습니다.
보릿고개 어려운 시절 자식눔들 먹이고 공부시키느라 늘어졌던 고생에 세월을 따라
휘어져버린 허리를 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들에게서 더 이상 젊음을 찾아 볼 수는 없습니다. 그 옛날 푸러렀던 젊음과
찬란했던 영광은 아득한 전설일 뿐입니다. 그들을 사랑하며 기억해주던 사람들은
하나 둘씩 사라져갔고 회색 빛 시간만이 이제 그들의 남은 인생 여정일 뿐입니다.
 
열정을 쏟았던 인생의 무대에서 그들의 역할은 자꾸만 줄어갔고 이제 어느 곳에서도
그들의 모습은 잘 어울리지가 않습니다.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며 그들을 위하여 비워둔 의자는 없습니다.
양지바른 담벼락 인적 드문 공원의 모퉁이의자 무료한 양로원...
 
외로움은 이제 그들만의 익숙해진 고통입니다. 어느 사이엔가 그들은 더 이상 세상의
주인공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 더 이상 희망은 없는 것일까요?

33. 41. 61. 63. 74. 120. 187. 사랑을 찾아오는 자들의 수. 명곡교회부설 노인대학의
자꾸만 늘어가는 학생들입니다. 그네들은 이제 우리의 친한 벗이 되었습니다.
이들이 바로 주님이 찾으시던 한 마리 잃은 양이며 2000년 전 예루살렘교회를
찾아가던 고아와 과부들입니다.
 
오늘도 그들은 모여서 번호를 새어가며 박수를 치고 유치원 손녀처럼 아이가 되어서
노래와 율동을 따라하고 있습니다. 노인대학이 열릴 때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목격하는 30여명의 봉사자들도 덩달아 신이 납니다. 사랑과 봉사의 손길을 통하여
(전날부터 시작됨) 따스한 밥을 먹으며 일류 미용사의 솜씨로 머리를 손질합니다.
의사선생님과 한의사 원장님께 진료를 받으며 침을 맞고 묵은 병을 치료합니다.
 
무식이 한스럽다던 어느 할머니 이제야 한글 반에서 글자를 배우며 음악반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보건과 취미반의 만들기가 어렵지만 교수님 따라서 열심히
공부했더니 손수 만든 손자의 선물이 생겼습니다. 경건의 시간 구수한 말씀이 자꾸
재미있어지고 굳었던 마음에 온기가 돌아오며 의심과 머뭇거림에서 이제 신뢰와 감사의
마음으로 바뀌어갑니다.
   
"고맙구로 늙은기 인자 죽지도 못하게 생겨서 우짜노"

목사님 손을 꼭 잡으며 감사의 표시로 해보는 유머입니다. 부끄러운 듯 수줍은 웃음을
띄고 모두들 아이가 된 듯 합니다. 자꾸만 동심의 세계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날아갑니다. 천사처럼 희망의 날개를 달고 날아갑니다. 
희망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햇빛처럼 공평하게 존재합니다

오랜시간 닫혀있었던 그들의 방, 언젠가 그 어두운 방의 문이 열리면  그들은 세상의
눈으로 알 수 없었는 비밀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 곳에는 저들이 지금은 모르지만  언젠가는 깨달을 주님이 계십니다.
오늘도 저들의 영혼을 지켜보고 계십니다.
비록 미숙한 솜씨로 땀을 흘리며 일하는 우리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시면서...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막9:37)

노인들 중 90프로 이상이 불교권의 비기독교인 입니다. 우리가 이 일을 위하여
수 차례 노인정을 방문할 때마다 언제나 사탄이 먼저 와서 앉아 있음을 발견합니다.
그들의 영혼을 위하여 기도해 주십시오. 기도로 돕는 것은 함께 하는 동역입니다.

** 명곡노인대학의 모습, 현재 10년차, 100여 명이 매주 수요일 출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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